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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37번째 묵상
김은엽 2017-04-26 추천 0 댓글 0 조회 144

 

고난주간 37번째 묵상 

탈렌트 김영애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분의 일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어느 교회의 교인이었던 것과 사업을 하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사업을 접게 되었던 것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하던 사업은 황토팩사업이었는데 홈쇼핑에서 인기를 얻어 연매출 1,700억원에 이르기까지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소비자고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황토팩에 중금속이 검출되었으며 황토팩 제작과정에서 기계가 깎이며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를 하게 되어 매출이 끊긴 것은 물론 이미 판매한 것 까지 환불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결국 사업은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식약청에서 황토팩에서 나오는 중금속은 황토에 원래부터 포함되어 있는 물질이며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발표를 했고, 이에따라 김영애씨가 경영하던 회사는 허위사실을 보도한 방송국 PD를 고소했지만 재판부는 비록 허위보도라 해도 공익을 위한 방송이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사실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방송보도 이후 그 충격과 고통의 과정가운데 이혼하게 되고 또한 병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난 김영애씨를 안타깝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국 PD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송은 소비자를 위한다는 의도로 방송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함으로서 회사가 파산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방송 뿐 아니라 우리들도 내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진실에 부합한 것인가를 늘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장에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주장하기를 중단하고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신중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pd에 대한 비난에도 적용됩니다.

 

어제 서울지방회 월례회에서도 어떤 분이 잘못된 정보를 갖고 과도하게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비판을 받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김영애씨는 한 인터뷰에서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그리 따지면 나도 살면서 정말 부끄러운 일 많이 했다. 누구를 뭐라고 하거나 미워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어떤 미운 사람도 가슴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남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나의 관점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을 이해하고 살리는 방향으로 태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점을 디자인하라”는 책을 쓴 박용후씨는 “우리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래야 하는가?'가 불분명한 것이 상당히 많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고난주간 세번째 날입니다. 2,000여년전 오늘 예수님은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고 그 집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귀한 향유 한 옥합을 부었습니다. (마 26:1-11, 막 14:1-10, 요 12:1~8)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었지만 제자들은 분개하여 “이 값비싼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낫다” 고 비난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좋은 일' 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관점에서는 맞을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생각하셨던,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관점에서는 맞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마태나 마가는 여러 제자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으나 요한은 그들 중 예수를 팔 가룟유다가 그 말을 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6)

좋은 의도를 갖고 남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자기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막 14:6) 그러나 유다는 자기에게 좋은 일을 추구했습니다.  우리도 비판에 앞서 나를 돌아봐야 하고 또한 좁은 시야에 사로잡혀 한 가지밖에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문제를 뒤집어서 생각해본다든지, 좀 더 시야를 넓히는 게 필요합니다. 

함부로 판단하여 말하지 말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먼저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결과만 보고 칭찬과 비난을 하기 전에 동기를 봐야 하고 과정을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되는' 것이 결과지상주의적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 될지 모르지만 방법론적 관점에서는 좋은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비판하기에 앞서 한번 더 숙고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  또한 나 자신의 이익이 침해된 것이 타인 비판의 동기가 아닌지, 내 눈에는 같은 모습의 들보는 없는지 나를 먼저 돌아보는 성숙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누구를 뭐라하거나 미워할 처지가 아니다" 라고 했던 김영애씨의 깨달음이 오늘 나의 깨달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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