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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김은엽 2016-05-26 추천 0 댓글 0 조회 270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유기성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상담해 보면 오랜 시간 이단 메시지만 듣고 그 사람들과 교제함으로 인한 영적 완고함이 심각하여 좀 처럼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미혹에 의하여 영적인 눈이 먼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매일 보고 듣는 것, 만나는 사람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했던 적이 없었음에도 우리가 너무나 자주 영적 메마름에 빠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보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하며, 의지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려고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암송하며,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듣기 힘쓰며, 무시로 기도하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수시로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누구를 만나든지7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주님을 의식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필립 얀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들] (pp 172-175)에 보면 그가 기독교인으로 회심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썼습니다.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가능한 한 책에 쓰여 있는대로 옮겨 드리려 합니다.

[내게 있어 기도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벽에 다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부분적으로는 호기심으로,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환상을 깨뜨리고 싶은 악의로, 나는 심지어 ‘기독교인’으로 행세하면서 그들 주위를 귀찮게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십대 때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꾸몄다. 거기에다 극적인 세부사항을 첨가해서 재미있게 윤색한 후 기독교 간증 모임들 중 한 곳에서 그것을 말했다. 그 반응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울었고, 모든 사람틀은 나를 껴안고는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특별 감사 기도회를 가졌다.
나는 최상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방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새벽기도에도 참석했으며 ‘간증하기’ (giving your testimony)라고 불리는 의식에 참석해서 목소리를 부드럽고 진지한 음조로 채색한 뒤 주님이 나를 축복하시거나 혹은 ‘나에게 말씀하신’ 방법에 대해 말하였다. 몇 주 후에 나는 내가 무리 중에서 최고의 간증자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무리가 나에 대해 감사 기도를 드리고, 혹은 그들의 주리고 갈급한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정기 모임 후에 기숙사로 달려가 나의 진정한 친구에게 내가 얼마나 철저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속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마음 속으로 나는 그들의 믿음을 유린했다. 나는 자연주의자였고 신이 없다고 믿었다. 존재히는 세상은 바위, 나무, 공기가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뿐이었다. ‘영적인 존재’ 는 없었다.
그들의 신앙은 영적인 특수용어인 친밀함이라는 따뜻한 감정과 우연히 긁어모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나는 분명한 불신자였지만, 단지 신앙 형식을 따름으로써 성인 (saint)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실험을 한지 약 1년 후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압도적인 기쁨이 없었다면, 그것은 정말 굴욕적이고 난처한 일이었을텐데, 하나님은 내가 그 분을 찾고 있지도 않은 때에, 엄밀히 말하면 그 분을 열렬하게 부인하고 있었던 때에 놀랍고 부인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만나 주셨다.
나는 진정한 기독교적 회심을 경험했다. 일상적인 기도회 시간에 하나님은 나에게 임하셨다. 그분은 나에게 그분의 사랑과 용서를 보여 주셨고, 나는 다시 태어났다. 비록 나는 한동안 기독교 신앙을 무너뜨리고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모순을 알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셨을 때의 그 변화는 너무 심오해서 이후로는 결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일찍이 친구들을 불가지론으로 몰아갔었는데 이제 그 회의적인 친구들에게 이 체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선천적 색맹에게 어떻게 색의 세계를 설명하겠는가?
나는 “하나님은 나를 완전히 변화시키셨다’ 혹은 “하나님은 나의 모든 사고 방식, 나의 가치관을 바꾸셨다?’ 혹은 “그분은 나에게 전에 결코 알지 못했던 평화를 주셨다’와 같은 불명확한 구절들을 옳조리게 되었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어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혼란스러워했고 심지어 배신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결국 저 불쌍한 놈도 물들었군. 몇 달동안 저 열성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어서 그들을 모방하더니 저 놈이 미쳐 버렸어, 미쳐 버렸다구.”
나는 그들이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혹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너무 성공적으로 흉내냈었다.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로 부인할 수도 없고 결코 설명할 수도 없는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실체를 증명해줄 수 있을텐데! 왜 하나님은 보다 명백하지 않으실까? 나는 회의적인 나의 친구들이 하나님의 행위를 보고 결코 그것을 부인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잘 조화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했다. 기독교적인 행위들, 기도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과 믿음을 나누는 것, 예배를 드리는 것 등은 기독교가 사실이라고 누구에게나 확신시킬 만큼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실로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거대하고 전세계적으로 경의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주의는 밑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저 사랑으로 그분 자신을 나에게 증명하셨다.
내 회의적인 친구들을 생각하면 괴로울 뿐이다. 만일 하나님이 바로 그들의 눈 앞에서 정말로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들이 믿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그 대신에 나는 기도하고 나누고 사랑하고 섬기는, 단순하면서 때때로 지루하기 조차한 기독교적인 행위를 했다. 내가 일찌기 만났던 기이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그런 행위는 회의론자들을 확신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것은 농담거리가 되기도 하고 얼마든지 깜쪽같이 진짜인 것처럼 흉내낼 수도 있다.
나는 회의론자들을 확신시키기 위한 좋은 전략들을 세우지는 못했다. 몇 명은 믿게 되었고, 몇 명은 믿지 않았다. 몇 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에 의해 하나님께 이끌렸고, 몇 명은 그들의 세계가 허물어지자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여러분은 필립 얀시의 이 고백에 대하여 어떻게 상각하십니까?
분명한 것은 거짓으로 심지어 사악한 동기로 기독교인들과 어울렸던 필립 얀시가 그리스도인들과 계속하여 교제하다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꾸준히 노출되는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보여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요일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도 주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계속 빛 가운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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